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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성의 시작은 교감이 아니라 안전이었다

📑 목차

    11화. 몸으로 먼저 나타난 사회성의 신호들

    생후 1개월을 전후로 나타난 아기 고양이의 사회적 행동을 기록한다. 쭙쭙이, 신체 밀착 수면, 배를 드러내는 자세처럼 말보다 먼저 드러난 사회성의 초기 신호와, 어미 대신 사람과 자란 고양이에게서 나타나는 행동을 관찰과 행동학적 관점에서 정리한다.

     

    사회성의 시작은 교감이 아니라 안전이었다
    쭙쭙이(흡인안정행동) 이후 잠이든 모습

     

    놀이가 본격화되던 시기를 지나면서, 고양이의 행동에는 또 다른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의 움직임이 공간과 자극을 향한 반응이었다면, 이제는 특정 대상, 특히 사람의 몸과 손을 기준으로 한 행동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흔히 사회성이라고 부르는 영역이다.

    하지만 이 시기의 사회성은 우리가 기대하는 교감이나 애정 표현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다가온다거나, 부비거나, 눈을 마주치는 행동보다 먼저 나타난 것은 훨씬 조용하고 신체적인 신호들이었다. 손바닥을 빠는 행동, 몸 가까이에서 잠드는 모습, 배를 드러낸 채 깊이 잠든 자세처럼 말없이 드러나는 선택들이었다.

    이 글에서는 생후 1개월 전후, 고양이의 사회성이 어떻게 ‘행동’이 아니라 ‘상태’로 먼저 나타났는지를 기록해 보려 한다.

     

    1. 분유 이후에 나타난 쭙쭙이, 안정 행동의 시작

    분유를 먹이던 시기가 지나고, 점차 사료로 넘어가던 시점에 눈에 띄게 나타난 행동이 있었다. 흔히 ‘쭙쭙이’라고 부르는 행동이다. 아기 고양이는 사람의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마치 젖꼭지를 빨듯이 손바닥을 강하게 빨았다. 이때 골골거리는 소리가 함께 나오기도 했고, 한참 그렇게 있다가 그대로 잠들어 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흔히 ‘쭙쭙이’라고 부르는 이 행동은 정식 용어라기보다 보호자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표현에 가깝다. 행동학적으로는 영양 섭취와 무관한 흡인 안정 행동으로 분류되며, 고양이가 긴장을 낮추기 위해 반복하는 자기 위안 행동 중 하나로 설명된다.

    이 행동의 대상이 반드시 손바닥일 필요는 없다. 부드러운 옷감, 담요, 수건처럼 체온과 촉감을 연상시키는 대상에서도 동일한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이 고양이에게는 우연히 사람의 손이 그 역할을 했을 뿐, 중요한 것은 손 자체가 아니라 그 손이 제공하던 안정감과 경험이었다.

    이 행동은 먹이를 요구하는 신호라기보다는, 분유 수유가 끝난 이후에도 남아 있는 흡인 반사와 안정 욕구가 결합된 행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어미 고양이에게서 충분한 수유와 케어를 받았던 고양이든, 사람의 손으로 키워진 고양이든, 이 시기의 쭙쭙이는 ‘먹는다’기보다는 ‘안정된다’에 가깝다.

    특히 사람의 손바닥을 대상으로 이 행동이 나타났다는 점은, 그 손이 먹이를 주던 대상이자 체온을 제공하던 대상, 그리고 긴장을 풀 수 있는 기준점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사회성의 시작을 애정 표현으로 해석하기보다, 이 시기에는 고양이가 스스로 긴장을 낮출 수 있는 대상을 찾았다고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러웠다.

     

    2. 몸 가까이에서 잠든다는 것의 의미

    고양이가 사람 옆에 바짝 붙어 잠드는 모습은 보기에는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막상 곁에 있는 집사에게는 다른 감정이 함께 따라왔다. 처음 반려동물을 키우는 입장에서는 가만히 쉬어야 할 시간에도 몸을 조금만 움직이면 고양이가 깨지 않을지 신경이 쓰였고, 계속 곁에 붙어 있는 것이 고양이에게 불편한 선택은 아닐지 걱정되기도 했다. 이미 따로 마련해 둔 보금자리가 있는데도 굳이 사람 옆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며, 혹시 그 공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고양이의 행동을 조금 더 관찰해 보니, 이 선택은 불편함을 피한 결과라기보다 오히려 안정감을 향한 판단에 가까워 보였다. 고양이는 잠들기 전과 잠든 상태에서도 주변 환경을 매우 예민하게 평가한다. 소리, 움직임, 냄새, 온도처럼 작은 자극 하나하나가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몸을 완전히 이완시키는 수면은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사람의 몸 가까이는 고양이에게 의외로 예측 가능한 공간일 수 있다. 체온은 일정하고, 호흡과 움직임은 갑작스럽지 않으며, 주변에서 발생하는 소음이나 변화 역시 고양이에게 이미 익숙한 범위 안에 있다.

    보금자리가 있음에도 사람 곁을 선택하는 행동은, 그 공간이 불편해서라기보다 고양이가 그 순간 가장 안정적이라고 느낀 위치를 고른 결과에 가깝다. 특히 어린 시기의 고양이는 아직 환경 전체를 완전히 신뢰하기보다, 안전하다고 인식된 대상 근처에서 휴식을 취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때 사람은 ‘함께 있어도 위협이 되지 않는 존재’로 인식되며, 그 인식이 자리 잡을수록 고양이는 자연스럽게 거리를 좁힌다.

    그래서 다리 사이, 배 위, 엉덩이 옆처럼 신체와 밀착된 위치에서 잠드는 모습은 집사를 방해하려는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긴장을 풀 수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고양이는 불안한 상태에서는 쉽게 몸을 드러내지 않고, 특히 배를 보이거나 깊이 잠드는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시기의 행동은 보금자리를 거부했다기보다, 사람을 환경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변화로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걱정은 고양이를 배려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행동 자체는 이미 고양이가 스스로 괜찮다고 판단한 선택이었다. 고양이는 쉬기 위해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을 고른 것이고, 집사는 그 선택을 처음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었을 뿐이었다. 이 시기의 밀착 행동은 독립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안정이 충분했기 때문에 가능한 모습이었다.

     

    3. 배를 드러내고 자는 자세, 경계가 풀린 상태

    이 자세는 늘 사람 곁에서만 보이던 행동은 아니었다. 오히려 고양이가 자기 보금자리에서 혼자 잠들 때 더 자주 관찰할 수 있었고, 집사 옆에서 잘 때는 가끔씩, 특정한 컨디션일 때만 나타났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행동이 단순히 사람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고양이가 스스로 안전하다고 판단한 상황에서만 드러나는 모습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배를 완전히 드러내고 잠드는 자세는 고양이에게 있어 매우 취약한 상태다. 주요 장기가 노출되고, 갑작스러운 공격이나 위협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야생에서라면 거의 선택되지 않을 이 자세를 취한다는 것은, 그 공간과 상황을 충분히 통제 가능하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 그래서 이 행동은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한 제스처라기보다, 고양이 스스로 긴장을 내려놓았다는 결과로 나타나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흥미로웠던 점은, 이 자세가 항상 사회적 교감의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집사와 떨어진 공간, 자신이 익숙하게 사용하던 보금자리에서 더 편안하게 나타났고, 오히려 사람 곁에서는 완전히 몸을 말거나 경계가 남아 있는 자세로 잠들 때도 많았다. 이는 고양이가 사람을 신뢰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여전히 본능적으로 주변을 평가하고 선택하고 있다는 증거처럼 보였다.

    이 모습을 통해 느낀 것은, 아무리 실내에서 사람과 함께 살아가더라도 고양이는 여전히 야생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 위협이 없다고 계산된 상황에서만 몸을 맡긴다. 그 판단은 감정이 아니라 생존의 감각에 가깝다. 그래서 이 자세는 애교나 애착의 상징이라기보다, 고양이가 환경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이 행동을 알게 되면서, 고양이를 인간의 기준으로만 해석하려 했던 시선이 조금 바뀌었다. 실내에서 자라고, 보호받는 존재이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야생의 본능과 계산이 살아 있었다. 그래서 더 신기했고, 동시에 고양이라는 동물이 가진 균형감각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4. 눈인사, 가장 유명하지만 가장 늦게 완성되는 교감

    고양이를 키우기 전부터 알고 있던 몇 안 되는 사회화 정보 중 하나가 눈인사였다. 길에서 마주친 고양이에게 눈을 천천히 깜박여 보거나, 시선을 부드럽게 보내면 고양이가 답하듯 눈을 감는다는 이야기. 그래서 자연스럽게 우리도 자주 시도했고, 어릴 때부터 고양이에게 눈인사를 보여주곤 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아기 고양이는 그 신호에 거의 반응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가 신호를 잘못 보내고 있는 건 아닐지, 혹은 아직 신뢰가 부족한 건 아닐지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관찰해 보니, 눈인사에 대한 반응이 없었던 이유는 거절이나 무관심에 가깝다기보다, 아직 그 신호를 ‘사회적 언어’로 인식하지 못하는 단계였기 때문에 더 가까워 보였다.

    눈인사는 고양이 사회에서 매우 미묘하고 정제된 신호다. 이는 단순한 시각 반응이 아니라, 상대를 위협으로 보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이자, 긴장을 낮춘 상태에서만 주고받을 수 있는 교감 방식이다. 다시 말해, 눈인사는 감각이 아니라 관계 위에서 작동하는 언어에 가깝다. 아직 세상을 인식하고, 환경에 반응하며, 자신의 몸을 쓰는 것만으로도 바쁜 어린 고양이에게는 다소 이른 신호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인사를 계속 시도한 것이 나쁜 선택이었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고양이가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았을 뿐, 집사는 일관된 방식으로 위협적이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고, 그 경험은 고양이에게 반복적으로 누적되었을 것이다. 어미 고양이 역시 직접적인 ‘눈인사’를 가르친다기보다는, 시선과 거리, 움직임을 통해 긴장을 조절하는 방식을 몸으로 보여줬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집사의 눈인사는 가르침이라기보다, 환경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성묘가 된 지금, 눈인사는 가장 분명한 교감 신호 중 하나가 되었다. 서로의 눈빛을 확인하고, 천천히 깜박이며 긴장을 낮추는 순간들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이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긴 능력이 아니라, 관계가 쌓이고 감정이 안정되면서 비로소 작동하기 시작한 언어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돌아보면, 눈인사는 어릴수록 즉각적인 반응을 기대하기보다는, 언젠가 사용할 언어를 미리 들려주는 행위에 가까웠던 것 같다. 어린 고양이에게는 이른 신호일 수 있지만, 반복해서 보여준다고 해서 해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의미는 ‘지금 교감하고 있다’라기보다, ‘위협하지 않는 존재로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쪽에 더 가까웠다.

     


    이 시기의 사회성은 우리가 기대하는 교감이나 애정 표현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고양이는 자신의 몸을 통해 선택을 드러냈다. 어디에서 잠들 것인지, 어떤 대상에게 몸을 맡길 것인지, 어떤 상황에서 경계를 풀 것인지 같은 아주 기본적인 판단들이었다.

    쭙쭙이, 밀착 수면, 배를 드러낸 자세는 고양이가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선언이 아니라, 사람을 더 이상 위험 요소로 계산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음을 보여주는 신호였다. 사회성은 그렇게 조용하게, 말없이 시작되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는 고양이의 사회성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어미 고양이에게 배운 사회성과, 사람에게서 형성된 사회성의 차이, 그리고 현대 반려 고양이의 삶 속에서 사회성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지를 이어서 정리할 예정이다.

    사회성이 ‘배운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 더 넓은 시선으로 바라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