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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어미, 집 안의 고양이

📑 목차

    13화. 어미에게서 배운 경계, 사람에게서 배운 안정

    집 근처에서 마주쳤던 고등어 태비 길고양이를 계기로, 어미에게서 사회화를 배운 고양이와 사람에게 길러진 고양이, 그리고 그 중간 지점에 놓인 고양이들의 사회성을 관찰과 경험을 통해 정리한다.

     

    길 위의 어미, 집 안의 고양이
    어미 고양이지 않을까.

     

    집 근처 주택가에는 늘 길고양이들이 있었다. 갈색 고양이, 삼색 고양이, 흰색과 검정이 섞인 얼룩 고양이들이 골목과 담장 사이를 오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 무리 속에서 유독 눈에 들어온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다. 고등어 태비였다. 무늬가 또렷했고, 움직임은 조심스러웠다. 그 고양이는 사람을 향해 다가오지 않았고, 눈빛에는 분명한 경계가 있었다. 사람이 일정 거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분명했고, 그래서 나 역시 그 선을 넘지 않았다. 조금만 가까이 갔다면 도망쳤을 것이다. 그 사실을 서로가 알고 있는 듯한 거리였다.

    그 당시에는 그 고양이를 혹시 어미일까 라고 짐작만 하고 특별하게 생각 하진 않았다. 길 위의 수많은 고양이 중 하나였고, 그저 유난히 경계심이 강한 개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집에서 자란 고양이가 어느 정도 성장한 지금, 문득 그 고등어 태비 길고양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증거는 없다. 혈연을 증명할 방법도 없다. 다만 무늬가 유독 닮았고, 경계를 유지하는 방식과 시선을 처리하는 결이 묘하게 겹쳐 보였다. 어린 고양이였을 때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때는 비교할 기준도 없었고, 사회성이라는 것을 이렇게 오래 들여다보게 될 줄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의 고양이를 보며 오히려 그 가능성이 더 또렷해졌다고 느끼게 된다. 이 글은 그 확신을 주장하려는 기록이 아니다. 다만 그 고양이를 계기로 떠오른 질문들, 그리고 사회성이 어디에서 만들어지고 어떻게 갈라질 수 있는지를 관찰자의 시선에서 정리해 보려는 이야기다.

     

    1. 사회성은 성격이 아니라 형성된 기준에 가깝다

    길고양이들을 바라보다 보면 같은 환경에서도 반응은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에게 다가오는 고양이가 있는가 하면, 끝까지 거리를 유지하며 눈빛으로만 사람을 관리하는 고양이도 있다. 우리는 이런 차이를 흔히 성격이라고 부르지만, 행동학적으로 보면 고양이의 사회성은 타고난 기질보다 형성 과정의 영향을 훨씬 크게 받는다. 고양이는 생후 초기, 자신에게 안전했던 대상과 환경을 기준으로 ‘위험하지 않음’의 범위를 설정한다. 이 범위 안에 들어온 대상은 경계의 대상이 되지 않고, 그렇지 않은 대상은 평생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 사회성이란 결국 누구를 좋아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를 위험으로 분류하지 않게 되었느냐의 문제에 가깝다. 물론 유전적 경향도 분명 존재한다. 사람에게 비교적 관대한 개체가 있고,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개체가 있다. 그래서 사회성은 성격도, 경험도 아닌 그 둘이 겹쳐진 결과물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2. 어미에게서 자란 고양이가 배우는 사회성의 방향

    어미 고양이에게 충분히 길러진 고양이의 사회성은 사람의 기준에서 보면 차갑게 느껴질 때가 많다. 먼저 다가오지 않고, 필요 이상의 접촉을 피하며, 관계를 스스로 조절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회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어미에게서 배운 사회성의 목적은 교감이나 애정이 아니라 생존과 독립에 가깝다. 어미는 새끼에게 언제 다가가야 하는지, 언제 물러나야 하는지, 불필요한 신호를 줄이는 법을 몸으로 가르친다. 형제 고양이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물어도 되는 강도와 물러나야 할 타이밍을 배우고, 갈등을 키우지 않는 방법을 익힌다. 그 결과 이런 고양이들은 관계에서 감정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으며, 스스로 안정 기준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집 근처에서 보았던 고등어 태비 길고양이 역시 그랬다. 사람을 싫어하는 눈빛은 아니었지만,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태도가 분명했다. 가까워질 수는 있지만, 가까워질 이유는 없다는 듯한 거리였다.

     

    3. 사람에게서 길러진 고양이의 사회성은 왜 다르게 보일까

    사람의 손에서 자란 고양이는 구조적으로 다른 사회성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먹이를 제공하고, 체온을 나누고, 위험을 제거해 준다. 어미 고양이의 역할과 닮아 있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사람은 고양이에게 독립을 요구하지 않는다. 어미는 일정 시점이 되면 새끼를 밀어내고 혼자 살아갈 준비를 시키지만, 사람은 고양이가 성장해도 보호자의 위치를 유지한다. 그래서 사람에게 사회화된 고양이는 관계 중심의 사회성을 형성하기 쉽고, 관계 안에 머무는 법은 배우지만 관계를 끊는 법은 배우지 않는다. 이런 고양이는 야생 기준으로 보면 어딘가 미성숙해 보일 수 있다. 실제로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를 보면 한겨울에 실내 온도가 19도만 되어도 활동량이 눈에 띄게 줄고, 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럴 때면 반농담처럼 “밖에 있는 길고양이들은 얼마나 고생하는데”라는 말을 하게 되지만, 이 모습은 나약함이라기보다 버티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 완전히 적응했다는 신호에 가깝다. 이 고양이는 더 이상 추위를 견뎌야 할 이유도, 몸을 혹사해야 할 목적도 없다. 이 환경에서는 편안함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행동이 된다.

     

    4. 중간 지점에 놓인 고양이들, 그리고 오해받는 사회성

    가장 해석이 어려운 고양이들은 어미에게서 충분히 자란 뒤 성장 후 사람에게 입양되는 경우다. 이 고양이들은 이미 자신만의 사회성 기준을 가지고 있다. 사람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미 완성된 거리 조절 방식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고양이들은 사람의 기대에 맞춰 반응하지 않는다. 안기지 않고, 애교를 부리지 않으며, 필요할 때만 관계를 선택한다. 하지만 이것은 부족함이 아니라 안정이다. 어미에게 배운 사회성과 사람에게 배운 사회성 사이에는 우열이 없다. 방향이 다를 뿐이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어떤 환경에서 어떤 방식이 필요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고양이의 사회성을 생각하다 보니, 어느 순간 시선은 고양이에서 사람 쪽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길을 걷다 보면 길고양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정말 제각각이다. 고양이를 잘 아는 사람은 먼저 멈추고 거리를 지키며 반응을 살피고, 고양이를 잘 모르는 사람은 귀엽다는 이유만으로 손부터 내민다. 같은 고양이를 두고도 누군가는 조심스럽고, 누군가는 거리낌이 없다. 우리 집만 봐도 그렇다.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아내는 길에서 고양이를 보면 먼저 다가가 교감을 시도하는 편이고, 나는 오히려 반대로 고양이가 먼저 선택하기 전까지 거리를 유지한다. 이렇게 고양이의 수많은 성향과 사람의 수많은 성향이 얽히면서, 길 위에서는 매번 다른 장면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어떤 방식이 옳다고 단정하는 말 자체가 점점 조심스러워진다. 다만 분명한 한 가지는 있다. 이해 부족이든 호의든, 그 어떤 이유로도 생명에게 위협이 되는 행동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선을 넘는 순간, 그것은 성향의 차이가 아니라 명백한 잘못이 된다.

     


    고양이의 사회성은 성격이 아니라 이력이다. 누구에게서 자랐는지, 어떤 보호를 받았는지, 어떤 대상이 안전으로 분류되었는지가 그 고양이의 거리감과 반응을 만든다. 집 근처에서 보았던 고등어 태비 길고양이를 지금도 가끔 떠올린다. 그 고양이가 실제 어미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의 고양이를 보며 그 경계의 방식이 닮아 있다고 느끼는 것은, 어릴 때가 아니라 성장한 지금의 시점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생각이다. 그것은 확신이라기보다 시간이 지나서야 가능한 추측에 가깝다. 그리고 그 정도의 거리감이 이 글에는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다음 편에서는 고양이의 성장 과정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을 기록해 보려 한다.
    분유를 먹던 시기를 지나, 건식 사료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고양이의 행동과 관계 구조는 미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먹는 방식이 바뀌자 요구하는 방식도 달라졌고, 집사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작은 변화가 나타났다.
    돌봄이 완전히 제공되던 단계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조절하는 단계로 넘어가던 그 시점의 모습을 이어서 정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