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양이가 세상을 인식하기 시작한 순간

📑 목차

    7화. 눈을 뜬 뒤 처음 만난 세계와 관계 인식의 변화

    배변 안정 이후 생활 공간이 확장되며 나타난 아기 고양이의 시야 인식, 울음소리 의미, 청각 반응을 행동학적으로 분석하고 보호자 인식이 형성되는 과정을 기록한다.

     

    분유를 먹을때 계속 움직이는 귀

     

    배변 문제가 안정되면서 돌봄의 중심은 다시 한 번 바뀌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먹이고, 재우고, 배설을 돕는 데 집중했다면, 이 시점부터는 고양이가 무엇을 보고, 어떤 소리를 인식하며, 환경과 보호자를 어떻게 구분하기 시작하는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이 고양이는 눈을 뜬 뒤 처음으로 인식한 시야가 우리가 생활하는 집이었고, 그 사실이 이후 행동과 관계 형성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기록해 둘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이 시기부터 고양이는 공간을 배경이 아닌 정보로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소리와 움직임, 사람의 존재를 개별 자극이 아닌 연결된 신호로 해석하려는 단계에 들어선다. 7화에서는 눈을 뜬 이후 나타난 감각 반응과 울음의 변화, 그리고 생활 공간이 확장되면서 행동 반경이 달라지는 과정을 중심으로, 돌봄이 단순한 관리에서 관찰과 이해로 옮겨가던 시점을 기록해 보려 한다.

     

    1. 눈을 뜬 이후 처음 인식한 공간이 가진 의미

    고양이가 눈을 뜨고 처음 인식하는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이후 세계를 해석하는 기준점이 된다. 이 고양이에게 있어 눈을 뜬 뒤 처음으로 또렷하게 들어온 시야는 야외도, 어미 고양이의 몸 곁도 아닌, 우리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집 안이었다. 이 사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하려면, 먼저 일반적인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의 초기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연 상태에서 태어난 새끼 고양이는 생후 약 7~10일 전후로 눈을 뜬다. 그 이전까지는 시각 정보가 거의 없고, 어미의 체온, 냄새, 심장 박동, 젖을 빠는 감각을 통해 세계를 인식한다. 눈을 뜬 이후에도 한동안은 시력이 매우 흐릿하며, 이 시기의 새끼에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보이는 것’보다 ‘항상 곁에 있는 존재’다. 어미 고양이는 이 시기에 새끼를 핥고, 체온을 유지해 주며, 배설을 유도하고, 위험 시에는 몸으로 가려 보호한다. 이러한 반복된 상호작용을 통해 새끼 고양이는 어미를 안전의 기준점으로 학습하게 된다.

    행동학적으로 보면, 이 과정은 애착 형성의 초기 단계에 해당한다. 새끼 고양이는 어미의 냄새와 소리를 안정 신호로 인식하고, 시야가 열리면서 보이는 대상 또한 그 안정 신호와 결합시킨다. 즉, 눈을 뜬 직후 보게 되는 존재와 공간은 이후 스트레스 상황에서 기준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고양이의 경우는 조금 다른 출발선을 가지고 있었다. 어미 고양이와 함께 시각적 경험을 축적하는 과정이 생략되었고, 대신 눈을 뜬 이후 처음으로 인식한 대상이 보호자인 사람과 집 안 환경이었다. 이는 고양이 행동학에서 말하는 ‘초기 각인 대상’이 사람과 실내 공간으로 설정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러한 경우, 고양이는 사람을 단순한 먹이 제공자가 아니라 환경의 일부이자 안정 신호의 주체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보호자의 냄새, 목소리, 움직임이 어미 고양이의 역할 일부를 대체하게 되고, 집 안의 구조와 소리, 빛의 변화가 ‘기본 세계’로 학습된다. 이는 이후 사람의 목소리에 대한 반응, 시선 추적, 울음의 방향성, 접근 행동 등에 영향을 미친다.

    물론 이것이 곧바로 ‘사람을 어미로 인식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고양이의 인식 구조 안에서 보호자가 가장 먼저 안정과 생존을 연결한 존재로 기록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래서 이 시기의 고양이는 새로운 소리나 낯선 자극이 있을 때, 어미를 찾는 대신 보호자의 위치를 확인하거나, 울음으로 신호를 보내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이 과정을 돌이켜보면, 이 고양이에게 집은 단순히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처음으로 ‘세상이 안전하다고 판단된 장소’였고, 보호자는 그 판단의 중심에 있었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눈을 뜬 이후의 행동 하나하나와 시선을 보내는 방향,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방식, 울음의 대상이 단순한 성장 반응이 아니라, 관계와 환경을 동시에 학습해 가는 과정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2. 어미가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이후

    이 사실들을 알고 나니, 솔직한 감정 하나가 먼저 떠올랐다. 이 고양이가 조금은 불쌍하다는 생각이었다.

    눈을 떴을 때 곁에 있어야 했을 어미 고양이가 없었고, 본능적으로 배워야 했을 체온, 냄새, 움직임을 사람을 통해 대신 겪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남았다. 행동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지만, 감정적으로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물론 사람은 어미 고양이가 될 수 없다.
    혀로 핥아 줄 수도 없고, 같은 방식으로 체온을 전해 줄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양이가 처음 인식한 세계가 사람과 집 안이라면, 적어도 그 세계가 불안하지 않도록 만들어 줄 책임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더 조심하게 되었고, 더 관찰하게 되었으며, ‘문제없이 키우는 것’보다 ‘불편하지 않게 자라도록 돕는 것’을 기준으로 삼게 되었다.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보다, 무엇을 억지로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먼저 고민하게 된 시점이기도 했다.

    이 감정은 연약함에 대한 연민이라기보다, 알고 나서 생긴 책임감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 기록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구조든 입양이든 어떤 방식으로 시작되었든 간에

    “눈앞에 이 고양이가 어떤 과정을 건너왔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보는 마음가짐”이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생후 1개월 이전 울음소리의 의미와 변화 가능성

    이 시기의 고양이는 울음소리가 매우 단순하다. 흔히 병아리 소리처럼 들리는 높은 음의 짧은 울음은, 아직 감정을 세분화해 표현하기보다는 생존과 직결된 신호에 가깝다. 행동학적으로 보면 생후 한 달이 되지 않은 고양이의 울음은 크게 배고픔, 불편함, 고립 상태를 알리는 목적을 가진다. 즉, 특정 감정을 전달하기보다는 “누군가 와야 한다”는 신호에 가깝다.

    자연 상태라면 이 울음의 수신자는 어미 고양이다. 어미는 울음의 빈도와 강도를 통해 새끼의 상태를 판단하고, 젖을 물리거나 체온을 보완하거나, 위치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반응한다. 이 반복을 통해 새끼는 울음이 ‘응답을 불러오는 수단’이라는 것을 학습한다.

    하지만 이 고양이의 경우, 울음에 반응하는 존재는 사람이었다. 울음이 들리면 다가가고, 분유를 준비하고, 몸 상태를 확인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울음의 대상은 자연스럽게 보호자로 고정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울음은 점점 무작위적인 소리가 아니라, 특정 방향을 향하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흥미로웠던 점은 울음뿐 아니라 소리에 대한 반응이었다. 바닥에서 함께 있을 때 보호자의 목소리에 반응해 고개를 돌리거나, 종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작은 물체가 부딪히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는 모습이 자주 관찰되었다. 이는 청각 기능이 빠르게 발달하고 있다는 신호이자, 소리를 환경 정보로 처리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특히 분유를 먹는 동안에도 귀가 계속 움직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행동학적으로 이는 긴장이나 불안의 신호라기보다, 섭식 중에도 주변 자극을 동시에 처리하고 있다는 뜻에 가깝다. 고양이는 포식자이자 피식자의 성향을 동시에 가진 동물로, 먹는 순간에도 완전히 감각을 차단하지 않는다. 이 시기의 귀 움직임은 청각 발달과 함께 환경 감시 기능이 작동하고 있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러한 반응들을 종합해 보면, 이 고양이는 단순히 소리를 ‘듣고 있는 단계’를 넘어, 소리를 통해 관계를 인식하기 시작한 시점에 들어섰다고 느껴졌다. 울음은 보호자를 부르는 신호가 되었고, 보호자의 목소리는 안정 신호 중 하나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아직 다양한 울음소리를 구분해 사용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성장하면서 고양이는 상황에 따라 울음의 높낮이, 길이, 강도를 점차 세분화해 나가게 된다. 이후에는 요구, 불만, 관심 요청, 탐색 신호 등으로 울음의 의미가 분화된다. 그 출발점에 있었던 이 시기의 울음은, 단순하지만 분명한 목적을 가진 첫 의사 표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이 시기의 울음은 시끄러움이나 문제 행동으로 볼 대상이 아니라, 고양이가 처음으로 세상과 연결을 시도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연결의 대상이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이 고양이의 성장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지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싶어졌다.

     

    4. 소리에 대한 반응과 청각 인식의 확장

    생활 공간이 조금씩 확장되면서 소리에 대한 반응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보호자의 목소리, 종이 부스럭거리는 소리, 작은 마찰음에 귀를 쫑긋 세우며 방향을 인식하려는 모습이 자주 관찰되었다. 이는 단순한 호기심이라기보다, 청각 자극을 공간 정보로 해석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에 가깝다. 고양이는 시각보다 청각과 후각을 통해 환경의 안전성을 먼저 판단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소리가 나는 방향을 확인하고 몸을 조금씩 움직이는 행동은 주변 세계를 정리해 나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었다.

     

    분유를 먹는 동안에도 귀가 계속 움직이던 모습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완전히 불안한 상태라면 몸 전체가 경직되었을 것이고, 완전히 이완된 상태라면 귀 움직임이 줄어들었을 텐데, 먹으면서도 귀를 부드럽게 움직였다는 점은 현재 환경을 비교적 안전하다고 인식하면서도 감각을 열어둔 상태였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경계와 안정이 동시에 유지되는 균형 상태로, 주변 환경을 학습하기에 적절한 시점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바닥에서 놀 때 보호자의 목소리에 반응하거나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기고 몸을 움직이는 모습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시기의 고양이는 관계를 감정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반복되는 자극 속에서 안전한 방향과 안전한 소리를 구분하며 세계를 정리해 나간다. 보호자의 목소리에 반응했다는 사실은 애착의 증거라기보다는, 이 소리가 위협이 아니며 곧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경험이 누적된 결과라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해 보였다.

     


    배변 문제가 안정된 이후 고양이는 생각보다 빠르게 세상을 인식하고 있었고, 그 과정은 시야, 소리, 울음 같은 감각 반응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이 시점의 돌봄은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통제하는 일이 아니라, 고양이가 세계를 안전하다고 판단할 수 있도록 반복성과 일관성을 유지해 주는 일이었다. 돌봄은 관리에서 관계로, 그리고 관계는 감정보다 먼저 감각과 경험의 축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는 생활 공간이 더 확장되면서 마시는 물 사용, 놀이 시간, 휴식 리듬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기록해 보려 한다.

    잘 자라고 있는지 판단하는 기준이 ‘행동의 양’이 아니라 ‘중단과 회복의 신호’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정리할 예정이다.